필리핀에서 어학연수를 마칠 무렵,
내 통장에는 200불이 남아 있었다.
그마저도, 공항에서 위기의 순간이 닥쳤다.
짐 무게 초과로 150불을 내라는 필리핀 공항 직원의 말.
‘이건 덤탱이야...’ 싶었지만
버릴 짐도 없고,
이미 비행기 표는 떠날 준비가 끝난 상태.
결국 남은 건 50불.
그 돈 들고 호주로 돌아갔다.
마중 나와 줄 줄 알았던 친척 오빠는 갑작스러운 일로 못 오게 됐고,
픽업차 요금이 딱 50불.
근데 호주 달러로 환전하고 나니 45불밖에 안 되더라.
“이건 뭐지…” 싶었지만,
일단 타고 가서 새언니에게 빌리자 생각했다.
문제는… 새언니도 현금이 없었다는 것.
운전기사님께 “다음에 꼭 이용하겠다”며 돌려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의 아찔함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두 번째 호주생활.
오빠네 집에서 조카 돌보며 2주를 지냈고,
겨우 돈을 빌려 브리즈번 시내로 나올 수 있었다.
쉐어하우스를 구해 머물며
이번엔 농장 말고, 시티잡을 해보고 싶었다.
스시집에서 면접 연락이 왔을 때,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너무 떨렸고, 기대도 컸다.
영어는 여전히 한참 부족했지만,
운 좋게도 한인이 운영하는 가게였고,
사장님이 급하게 사람을 구하고 계셨다.
나는 운명처럼 채용됐다.
사실 처음엔 영어도 안 통하고,
기존에 일하던 언니가 나를 무시해 심적으로 힘든 나날이었지만
사장님이 내 성실함을 알아봐 주셨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언니도 나를 이해해주었다.
한 달 만에 15kg 빠졌지만,
그만큼 많이 배우고, 조금씩 나아가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돈이 더 필요했다.
룸메가 “같이 농장 가보자”고 했고,
나는 다시 익숙한 농장으로 향했다.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매니저가 내가 ‘경력자’라며 우대를 해준 것.
그곳에는 내 또래 친구들도 많았다.
일이 없을 땐 파티, 대화, 웃음.
하루하루가 스트레스 없는 노동의 시간이었다.
수입도 나쁘지 않았고,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멜버른 여행까지 다녀올 수 있었다.
처음엔 먹고살기 위해 간 농장이었지만,
이번엔 ‘나를 웃게 만든 추억’이 되었다.
마무리하며
두 번째 워홀은
더 힘들었고, 더 외로웠고,
그러면서도 더 따뜻했다.
첫 번째는 살아남기 위한 여정이었다면,
두 번째는 나로 살아가는 연습이었다.
그리고 그 끝엔,
사람들이 있었고,
웃음이 있었고,
내가 선택한 삶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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