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도착했을 때
나는 마음만 바빴고, 영어는 안 됐고,
막상 뭘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용감하게 이곳저곳 전화를 돌렸다.
“일하고 싶어요.”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Sorry, your English is not good enough.”
그 말이 참… 가슴에 쿡 박혔다.
내가 부족하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외국인에게 그렇게 들으니 더 선명해졌다.
‘아, 내가 진짜 안 되는 사람이구나’ 싶은 느낌.
그리고 솔직히, 그 말이 제일 아팠다.
고기공장에서 일하려 했지만, 그것도 안 됐다.
베스트프렌드가 예전에 호주에서 워홀했던 경험을 듣고
그걸 따라가기로 마음먹었었다.
“고기공장은 돈을 잘 준대.”
그래서 큐피버라는 비싼 예방접종(40만 원대)도 맞고
온갖 준비를 했는데… 결과는 탈락.
그때 허탈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다 결국, 한국인이 운영하는 빵공장으로 들어가게 됐다.
새벽 2~3시에 일어나서 출근, 오전 7시에 끝나는 스케줄.
워홀러들 사이에선 악명 높은 곳이었다.
주급도 아니고, 2주치 보증금을 걸어야 했고,
페이는 짰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장 먹고살아야 했으니까.
거절당하는 것도, 굶는 것도,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나는 시드니 한인타운인 스트라스필드에서
거실 쉐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새벽마다 나가는 내가 눈치 보였는지
주인 분이 싫은 내색을 하셨고,
나는 또 짐을 싸야 했다.
돈도 없이, 무작정 한인교회 목사님 댁에 신세를 지게 됐다.
스트라스필드에서 몇 정거장 더 가면 있는 조용한 마을이었는데
목사님 부부가 나의 형편을 알고 무상으로 일단 지내게 해 주셨다.
얼마나 감사하던지...
엄마에게 죄송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 시절,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버티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애들레이드에 있는 농장, 양파 공장 일이었다.
양파를 분류하고 포장하는 일을 하며
카라반에서 숙식하며 지냈다.
사실 시즌 끝자락이라
돈을 많이 벌진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진짜 전환점이었다.
왜냐면,
그 후에 일어나는 일은…
정말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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