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공장에 합격한 후
나는 시드니를 떠나 애들레이드,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시골 마을로 향했다.
처음 가보는 곳, 아무도 모르는 곳이었지만
망설임 없이 비행기를 탔다.
전날 밤은 애들레이드 시내의 백팩커에서 보냈다.
숙소도 직접 구하고, 끼니도 혼자 해결했다.
그 순간이 참 묘했다.
외롭고 막막하면서도… 전율이 느껴졌다.
“이제 진짜, 내 호주 생활이 시작되는구나.”
다음 날 도착한 곳은 페놀라라는 시골 마을.
매니저 오빠가 픽업을 해줬고,
카라반이 잔뜩 모인 야영장 같은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내 숙소는 싱글 침대 하나 있는 조그마한 카라반 한켠.
말 그대로, 누우면 끝이었다.
하지만 그땐 그게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일을 구했다는 안도감, 그 하나면 충분했다.
일은 새벽부터 시작됐다.
룸메 언니와 함께 공장으로 향해,
양파를 분류하고, 썩은 걸 골라내고, 포장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태어나 처음 해보는 몸쓰는 일이었기에
온몸이 쑤셨지만, 오히려 잠은 푹 잤다.
무엇보다 주급이 나온다는 사실이 엄청난 위로였다.
시즌 말이라 오래 일하진 못했지만
두세 달 정도 지났을 무렵,
“이제 일이 끝났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런데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브리즈번 쪽 공장에서 다음 시즌 시작되면 너희 먼저 보낼게.”
그 말만 믿고
다시 브리즈번으로 향했다.
하지만 현실은 또 쉽지 않았다.
도착 후, 한 달 넘게 대기.
관광지도 아니고, 마트 하나 있는 작은 시골 마을.
카라반 파크에 덩그러니,
인터넷도 안 되고, 요리도 어려운 그곳에서
마치 감옥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견뎌야 했다.
포기할까? 진지하게 수십 번 고민했지만
버티기로 했다.
그 선택이, 또 한 번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드디어 일이 시작되었고,
이번엔 사람 사는 집 같은 숙소로 들어가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만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호주인과 한국인 커플의 집이었다.
거기 한국인 언니가 잘 해줬었는데... 지금도 잘 지내겠지?
그리고 공장도 야외가 아닌 실내.
태양 아래 땀을 뻘뻘 흘릴 일도 없었다. 먼지는 많이 먹긴 했지만..^^;;
게다가 익숙해진 양파 분류 작업,
같이 일하는 한국인들과의 단결력,
그리고 “하는 만큼 버는” 시스템.
그때, 주급 1400불까지도 벌었다.
말로만 듣던 “대박 농장”이
드디어 내 인생에도 찾아온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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