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킹홀리데이의 마지막을
친구들과 함께한 멜버른 여행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나는 다시 필리핀으로 향했다.
이번엔 마닐라.
목표는 단 하나,
“더 자유롭게 영어를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번엔 어학원이 아니라
하숙집을 구하고, 개인 튜터와 1:1 수업을 받기로 했다.
하숙집 주인이 소개해준 두 명의 튜터와 수업을 시작했고,
생활도, 공부도,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다.
그러다 호주에서 만났던 동갑 친구도 마닐라로 오게 됐다.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었고,
즐거운 일상 속에서 조금은 느슨하고,
조금은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튜터 중 한 명이 필리핀 현지 은행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상담하는 일을 제안했다.
“일하면서 영어를 더 배울 수 있어요.”
그 말이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인터뷰도 통과하고,
진짜 도전해보려는 찰나—
같이 온 친구도 지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제는 단 한 명만 뽑는 자리.
결국 우리는 의리 하나로 둘 다 포기하기로 했다.
그게 후회는 아니었지만, 마음 한편 아쉬움은 남았다.
그 후, 튜터가 다시 연락을 해왔다.
“제 친척이 콘도미니엄을 갖고 있는데,
거기서 지내세요. 안전하고 좋아요.”
우리는 믿었다.
그동안 우리를 가르쳐준 사람이고, 거리낌 없는 신뢰가 있었다.
그래서 한 달치 보증금과 3달치 월세를 미리 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연락이 끊겼다.
인터넷 설치도 안 해주고,
문자도 전화도 답이 없었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나
빌딩 직원이 우리 집에 찾아와 말했다.
“이번 달 월세가 안 들어왔어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설마... 사기?"
우리는 항의했고,
3달치 선납했다고 말했지만
빌딩 측은 “그런 기록 없다”고 말했다.
결국, 포기했다.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각자의 길로 떠나기로 했다.
친구는 한국으로,
나는 세부로.
그리고, 나에게 주는 진짜 쉼표가 시작됐다.
세부에 도착해
한인이 운영하는 하숙집에 들어갔다.
이번엔 다시 튜터 한 명과 조용히 수업을 하기로 했다.
이젠 어떤 것도 욕심내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나를 쉬게 해주고 싶었다.
집 앞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주말엔 쇼핑몰 가서 맛있는 거 먹고,
쇼핑하고 돌아와 조용히 영어 공부하고.
그렇게 3개월을, 푹.
어떤 바쁨도, 불안도 없이.
정말 오롯이 ‘나’라는 사람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다.
마무리하며
누군가에게 당한 건 아프고 속상했지만,
그 경험조차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한 번쯤은 살아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믿음, 사람, 타지에서의 위험,
그리고… 나를 회복하는 법까지.
그 시간들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수업이었다.
점수는 안 남았지만,
진짜 살아본 흔적은 남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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