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무기력한 백수 시간을 뒤로하고,
나는 필리핀에 있는 스타트업 마케팅 회사에 취업했다.
숙소와 식사, 영어수업까지 제공되고,
6개월 후 정직원 전환이라는 조건.
나에게 이건 기회였고, 설렘이었다.
무엇보다 영어를 더 유창하게 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해외생활은 이미 익숙했고,
오히려 ‘나가서 사는 게 맞다’고 느끼고 있었으니까.
회사는 작은 팀으로 시작했다.
필리핀인 비서, 베트남 직원 1명,
그리고 나를 포함한 한국인 직원 2명,
그리고 한국인 이사님.
필리핀인을 제외한 넷은 한인교회 목사님 댁에 하숙하며 지냈다.
일하러 가는 올티가스와는 거리가 좀 있었지만,
매일 찌푸니(지프니)나 택시를 타고 출근했고,
교회에서의 생활은
신앙 안에서 서로 의지가 되어주는 따뜻한 공동체였다.
낯선 곳에서 신앙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함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위로였다.
그리고 사모님의 음식 솜씨는 나를 살찌웠다.
너무나 따뜻했던 공동체^^
필리핀의 교통은 정말 말로 다 못 할 정도였다.
어떤 날은 출근에만 2시간이 걸려
도착하면 곧 점심시간이 될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필리핀은 시간에 여유가 있었다.
그게 오히려 나에겐 잘 맞았다.
그리고 공휴일도 많아서
일하면서도 ‘살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주말마다 친구들과 놀러 다니고,
필리핀 문화도 익히고,
그 경험이 마케팅 업무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내 업무는,
필리핀에 영어를 배우러 오는
일본인, 베트남인, 중국인, 한국인 대상의 마케팅 & 콘텐츠 제작.
학교와 숙소, 비용 등을 정리하고
회사 카페에 소개 글을 쓰고, 문화 소개 자료를 만들고,
그 나라의 고객을 이해하기 위한 리서치도 끊임없이 했다.
현실은 그렇게 이상적이지만은 않았다.
영어 수업을 더 체계적으로 받고 싶었지만,
회사 상황상 여유가 없었고,
점점 수업은 밀리고, 일만 남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사님이 투자 유치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정직원 전환은 점점 미지수로 남았다.
함께 시작했던 한국인 동료는 6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갔다.
나는 남았다.
책임감 같은 것이 자꾸 발목을 잡았다.
초기 멤버로 시작했고,
어딘가 ‘끝까지 버텨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4개월을 더 버텼다.
정식 월급은 아니었지만,
소정의 생활비를 받으며 회사를 지켰다.
그 시간은,
진짜 ‘가슴으로 일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현실이라는 벽은…
의지만으로 오래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직원 전환은 여전히 미정이었고,
생활비로만 견디기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져갔다.
정말 수십 번을 고민했다.
"나는 더 버텨야 하나,
아니면 돌아가야 하나?"
결국,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모든 걸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10개월은 내 인생에서 가장 ‘진짜로 일해본 시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돈보다 중요한 걸 배운 시간이었다.
마무리하며
스타트업에서의 10개월은
매 순간이 도전이었고,
매일이 작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좋은 뜻만으로 일이 잘 되진 않았지만,
진짜 애정을 갖고 임해본 첫 커리어의 시작이었기에
나는 이 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 나는,
다시 어떤 자리에서도
스스로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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