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돌아온 나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8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은 내게 경제적으로 안정된 시간이었고,
큰 재미도 없었지만,
어쩌면 내 인생에 '처음으로' 찾아온 평화 같았다.
일을 시작하고 7개월 만에 결혼을 했고,
드디어 나에게도 안정의 시기가 온 것만 같았다.
일은 바쁠 때는 정신없이 바빴지만,
또 일이 뜸할 때는 자기계발을 하려고 노력했다.
영어공부도 하고, 관련된 자격증도 따고,
익숙해진 디자인 작업 속에서 나만의 성장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익숙함은 곧 지루함이 되었고,
나 스스로 발전이 없는 것 같아 괴로웠다.
그 무렵, 나는 영어 교사가 되면
계속해서 내 공부를 이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테솔 자격증도 따고,
회화 공부도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디자인 일은 큰 스트레스는 없었지만,
크지 않아도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과 매년 오르는 연봉은
나를 서서히 안주하게 만들었다.
결혼 전에 있었던 빚,
결혼하면서 생겼던 빚.
모두 이 직장에서 일하며 갚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결혼하면 곧바로 아이가 생길 줄 알았는데,
7년 동안 생기지 않았다.
가끔 생각했다.
'남편이 조금 더 안정적인 직장을 다녔다면,
내가 덜 부담을 느꼈을까?'
하지만 살아보니 알겠더라.
나는 본질적으로 누구에게 기대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오히려,
'내가 돈을 많이 벌어 남편을 쉬게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아이 없는 7년 동안,
우리는 긴 신혼처럼 지냈다.
먹고 싶은 걸 먹고,
크게 돈을 모으진 못했지만,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했다.
그러는 사이 남편이 하던 일은 엎어지기도 했고,
사업도 마이너스가 되어버렸다.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여러 번 겪었지만,
그래서 더더욱 나는 '내가 일을 멈출 수 없다'는 절실함을 품고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3년에 한 번씩 찾아온다는 위기가 내게도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언가를 저질렀다.
처음에는 중고차를 샀고,
그 다음엔 새차를 뽑았다.
할부금을 갚아야 했기에,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빚'은 늘 내게 일을 하게 하는 힘이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해외로 다시 나가고 싶은 마음도 많았다.
하지만 이민은,
마음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아이를 좋아하는 나는
결혼하면 아이 셋은 낳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달랐다.
오랫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서,
나도 모르게 우울해졌다.
누군가의 결혼 소식,
누군가의 출산 소식.
기뻐해주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슬퍼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기적처럼 내게 찾아왔다.
임신.
그토록 바라던 일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한꺼번에 내게 찾아왔다.
새 차를 산 지 겨우 4~5개월 만에
아이를 갖게 되었고,
지겨웠던 직장 생활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내 인생에,
꽃잎이 흩날리는 듯한 순간이었다.
물론,
앞날이 걱정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이 키우는 데 드는 돈,
갚아야 할 할부금들.
하지만 그런 현실적인 고민 따위,
내게 찾아온 이 기쁨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우리 아이를 통해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우리 부모님도
오랫동안 기다리셨던 기적이었다.
지금 나는
너무 사랑스러운 19개월 딸과 함께
매일을 감사하며 살고 있다.
해외생활이 내 인생 전환의 첫 번째였다면,
지금은 내 인생 두 번째 전환의 시간이다.
그리고,
나는 이 변화가 참 사랑스럽다.
🌷
'엄마로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도 기싸움 중입니다, 21개월 아기와 (0) | 2025.06.20 |
---|---|
💤 꿈도 체력도 사라지는 요즘 (0) | 2025.05.20 |
💤 천국이었단 걸… 집에 와서야 알았다 (0) | 2025.05.14 |
🌸 "내게 와줘서 고마워" – 나의 첫 만남 이야기 (0) | 2025.05.02 |
오랫동안 기다린 작은 선물 (0) | 2025.04.29 |